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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aster story

환경 역사 알아보기3: 환경 운동

  안녕하세요. 오늘은 환경역사 바로 알기 세 번째 글로, 환경 운동 역사에 관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과거를 통해 미래와 현재를 대비할 수 있고, 환경과 재난은 밀접한 연관이 있기에 관심 있게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우리나라 환경운동 역사를 보기 전에 해외 환경운동 역사를 잠깐 보고자 합니다. 19세기 말 미국 서부 개척 시대에 환경운동이 처음 일어났습니다. 그 당시 미국에서는 서부 개척으로 인해 농장, 목장, 광산 개발로 자연 파괴가 심했습니다. 이 때 존 뮈어가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지정하고 (1890) 시에라 클럽을 창립했습니다. (1892) “인간은 자연을 정복해서는 안 된다고 그는 주장했습니다. 이   때 기포드 핀초가 미국 초대 산림청장으로,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미국 제 26대 대통령으로 국토의 3분의 1을 연방정부 소유로 하는 등 환경 보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최초의 환경 운동은 도시가 아닌 시골(농장, 목장, 광산)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 주목해야 할 점입니다.

 

  당시 도시 산업지역에서는 물, 대기, 쓰레기 등과 환경문제 발생했음에도 환경운동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물질적 풍요를 위해 환경오염은 참자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차 대전 후 도시를 중심으로 반공해 운동 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계기가 된 것은 LA에서 자동차로 인한 광화학 스모그 사건 (1943)이었고 그 뒤로, 펜실베니아 주의 도노라 사건(1948), ‘침묵의 봄책이 출간되었고 (1962) 카야호가 강 사건(1969)이 있으면서 환경운동이 본격화되었습니다.

 

 

  그러다 1970년에는 지구의 날이 제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패트릭 무어는 1971년에 그린피스 창립해 반핵, 반포경 운동을 캐나다에서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국제적인 조직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나라 환경운동 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 자연보호운동을 우리나라는 자연보존협회(1963) 설립 이 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뒤 1967년에는 산림녹화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민간단체에서 환경운동도 진행되었습니다. 1975년에는 한국환경보호연구회(현재는 협의회)가 설립이 되었고 1976년에는 전문가 모임인 한국환경문제협의회(일사회)가 설립되었습니다.

 

 

  정부도 같이 참여를 하게 됩니다. 1970년에는 새마을 운동(산림녹화, 하천정화), 1972년에는 유엔인간환경회의 참석, 1977년 환경보전법 제정과 자연보호 범국민운동(자연보호협의회), 1980년에는 헌법에 환경권을 명시하게 됩니다.

 

  반핵 반공해운동은 1980년대가 되면서부터 시작됩니다. 1978년에 우리나라 최초 원자력 발전소가 경남고리에 설립이 됩니다. 1982년에 한국공해문제연구소 창립, 1984년에 반공해협의회 결성, 1988년에 공해추방시민운동연합이 결성됩니다. 1991년에는 낙동강 페놀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외, 우리나라 환경운동 역사를 이제는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나갈 환경 및 재난의 역사는 우리 손에 달렸습니다. 항상 관련된 문제나 뉴스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행동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