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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aster story

비나이다 비나이다 ; 재난 막는 문화재 ➀

안녕하십니까, 이번 주에도 찾아온 희망블로거 김지현입니다.

지난주에는 조선시대 발생했던 재난과 그에 따른 조선 정부의 대응방법을 살펴보았는데요.

 

지난주 포스팅에서도 소개했듯이 우리 선조들의 재난대응의 역사를 말할 때에는

토속(민간)신앙을 함께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 선조들이 토속 신앙에만 매달려 실질적인 대응을 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성종연간 기록 참고)

 

그래서 이번 주에는 재난을 막아주는 역할을 했던(토속신앙에 기인하여)

우리 선조들의 문화재들을 살펴보겠습니다.

 

 

 

1.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종목 : 국보 제41

분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당간 시대 : 고려시대

소재지 : 충북 청주시

 

절에 행사가 있을 때, 그 입구에는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이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당간이 서 있는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는 예전에 용두사라는 절이 자리 잡고 있던 곳이다. 용두사는 고려 광종 13(962)에 창건되었으나 고려 말의 잦은 전쟁과 난으로 인해 폐허가 되었고, 절이 있던 터는 현재 청주시내의 가장 번화한 거리로 변하였다.

 

이 당간은 밑받침돌과 이를 버티고 있는 두 기둥이 온전히 남아 예전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두 기둥은 바깥면 중앙에 세로로 도드라지게 선을 새겨 단조로운 표면에 변화를 주었다. 그 사이로 원통 모양의 철통 20개를 아래위가 서로 맞물리도록 쌓아당간을 이루게 하였고, 돌기둥의 맨 위쪽에는 빗장과 같은 고정장치를 두어 당간을 단단히 잡아매고 있다. 특히 세 번째 철통 표면에는 철당간을 세우게 된 동기와 과정 등이 기록되어 있는데, 원래는 30개의 철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예로부터 청주에는 홍수에 의한 재난으로 백성들의 피해가 많았는데, 어느 점술가가 이르기를 큰 돛대를 세워 놓으면 이 지역이 배의 형상이 되어 재난을 면할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결국 이곳에 돛대 구실을 하는 당간을 세워 놓으니 재난을 피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청주를 주성(舟城)이라 이름하였다고 하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2. 남악사

 

 

종목 : 문화재자료 제36

분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제사유적 / 산신당

시대 : 미분류

소재지 : 전남 구례군

 

남악은 신라시대 지리산을 일컫는 것으로 남악사는 삼국시대부터 국민의 평화 및 질서유지와 풍년을 기원하는 지리산 신제를 모신 곳이다.

 

삼국시대에는 천왕봉에서 제사를 지냈으며 고려 때에 천왕봉에서 노고단으로 옮겼다. 조선 세조 2(1456)에는 갈뫼봉 북쪽 내산면 좌사리 당동이란 곳에서 제를 올렸다. 기록에 따르면 해마다 봄과 가을, 설날에 왕명으로 제사를 올렸으며, 재난이 있을 경우에는 별도로 제를 올리기도 하였다.’고 한다.

 

원래는 3칸뿐이었으나 영조 13(1737) 여러 건물을 추가로 마련하였고, 폐사되었다가 1969년 화엄사 자장암 옆에 10여평 규모로 새로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는 구례군민의 날에 약수제로 변형되어 행하고 있으며, 건물은 앞면 3·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3. 방사탑

 

 

종목 : 시도민속문화재 제8

분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민간신앙 / 마을신앙

시대 : 미분류

소재지 : 제주 제주도 일원

 

제주도 일원에 자리하고 있는 17기의 방사탑이다. 방사탑은 마을의 어느 한 방위에 불길한 징조가 보인다거나 어느 한 지형의 기가 허한 곳에 쌓아두는 돌탑으로, 부정과 악의 출입을 막아 마을을 평안하게 하고자 하는 신앙의 대상물이다.

 

탑은 대체로 좌우·음양·남북 대칭의 쌍으로 만든다. 밑면이 넓은 원통형으로 쌓은 돌무더기 모양 위로 돌하루방이나 동자석 같은 석상 또는 새모양의 자연석이나 석상을 올려놓는데, 전체 탑의 크기는 사람의 키 높이 이상으로 한다. 탑 속에는 밥주걱이나 솥을 묻어 두는데, 밥주걱을 묻는 이유는 솥의 밥을 긁어 담듯 외부의 재물을 마을 안으로 담아 들이라는 뜻이고, 솥을 묻는 것은 솥이 무서운 불에도 끄떡없이 이겨내듯 마을의 재난을 없애달라는 민간신앙적인 의도를 담고 있다.

  

 

 

4. 백련정사 칠성도

 

 

종목 : 시도유형문화재 제62

분류 : 유물 / 불교회화 / 탱화

시대 : 미분류

소재지 : 인천 남구

 

칠성도는 북두칠성과 여러 별들을 불교화한 것으로 도교와 불교의 결합을 보여주는 불화이다. 불두칠성은 오래전부터 여행의 길잡이로 신앙되어졌고, 나아가 인간사를 주관하는 권능을 가진 별로 신앙되었다. 칠성도의 본존불은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로 북극성을 불교화한 것이다. 치성광여래의 몸에서 빛이 나와 그 빛으로 모든 중생을 교화시키고, 모든 재난을 사라지게 한다고 믿어진다. 그러므로 북두칠성과 치성광여래는 재앙을 물리치고 질병을 다스리며, 수명연장과 득남(得男)을 기원하는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가로로 긴 화면에 다른 칠성도에 비해 화면구성이 단순하며, 이목구비 등의 세부표현이 소략하게 처리되었다. 전체적으로 안료가 탈락되거나 후에 채색이 덧칠해진 부분도 있다. 화기(畵記)는 일부 손상되었으나 원래 전남 장성의 방장산(方丈山)에 소재한 사찰에서 달기(達基, 18851961)라는 화승(畵僧)이 제작한 사실을 알려준다.

 

이 칠성도는 단순한 화면구성, 섬약한 필선, 얼굴에 음영이 가해지고 적색, 녹색 및 코발트빛 청색이 주조를 이루는 채색방식 등의 특징으로 보아 20세기 초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문화재청

 

 

다음 포스팅으로 이어집니다.....